마호야쿠 번역하는 오믈렛 2023. 4. 6. 22:56

시노
표정 그만 바꿔.


파우스트
알고 있어. 보지 마.


빗발이 강해졌다.
비가 쏟아지는 굉음에 휩싸이고, 테라스석의 손님들이 처마 아래로 이동한다.

나와 시노도 나란히 섰다.
돌아갈 시간을 상의하고 있는 것인지 귓속말을 하는 손님들도 늘었다.

시노가 내 팔을 잡아당긴다.
시선을 향하지 않고 고개를 기울이자, 생각한 대로 그도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시노
전선(殿戦)이 뭐야.


뜻밖의 질문이었다.
그의 손을 보자, 마법을 쓰는 전술 서적을 읽고 있다.

그에게는 아직 너무 이른 책이다.
기초 지식이 없는 채 전술을 익혀도 오용해버릴 가능성이 있다.



파우스트
전선이라는 건 후퇴선(撤退戦)이야. 하지만 네가 전술을 배우는 건 아직 이르…….


시노
후퇴는 도망치는 거잖아? 그런데 이 책에 실려있는 지휘관은 절찬받고 있어. 어째서지?


승리와 공적을 중시하는 시노 다운 질문이었다.

그의 그런 일면을 바로잡고 싶다.
그런 교육자로서의 마음이 자극되어, 빗소리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시노에게 속삭인다.


파우스트
큰 승리나 정면돌파만이 장수의 공적은 아니기 때문이야.


시노
어째서.


파우스트
후퇴선은 많은 희생을 낳아. 아군의 희생을 극한까지 억제하며 후퇴하는 건 때로 승리하는 것보다 어려워.


시노
이기는 것보다?


파우스트
그래. 패배하고 도망칠 때 아군의 사기는 낮고, 지휘계통은 흐트러지기 쉬워져.

반대로 적은 기세를 높이고 있지. 착실하게, 냉정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아군이 전멸해.


시노
그렇군. 최후방을 기키는 후방 부대의 활약으로 군의 운명이 변한다는 건가.

그래서 이 녀석은 명장이라고 불리고 있다는 거구나.


파우스트
누구?


나도 알고 있는 역사상의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책이 들이밀어졌다.


시노
파우스트 라비니아. 중앙 국가의 선조, 알렉 그랑벨의 동지인 건국 영웅이야.

격전의 전선에서 마법사 부대가 혁명군을 전멸로부터 구했고, 그 무공은 중앙 국가 전역에 알려졌어.


파우스트
………….


비 내리는 잿빛의 풍경 속에서 시노는 불만과 불신의 색을 숨기지 않았다.



시노
너랑 똑같은 이름이야.


파우스트
……시노. 그 책은…….


시노
너도 뭔가를 숨기고 있지. 그런 건 딱히 아무래도 좋아. 어차피 지금뿐인 사이니까.


빛바랜 거리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진다.
지금뿐인 사이라는 말이 어딘가 쓸쓸하게 울렸다.



시노
하지만 정체불명인 남자의 명령을 언제까지고 들어줄 의리는 없어.

다음엔 히스를 먼저 보내지 마. 나는 따르지 않을 거야.



시노의 불복은 타당했다.
신원을 밝히지 않는 상대에게 목숨을 맡길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여유 없는 시노의 태도에 나는 드디어 확신했다.



파우스트
(……시노는 뭔가를 숨기고 있어. 아마도, 히스랑 관련된)



전부터 혹시나 싶을 때가 있었다.

시노는 늘 주군인 히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신경 쓰고 있다.

그 시노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히스의 <거대한 재액>의 상처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기회가 적었다.

평소의 시노로 생각하면, 히스의 <거대한 재액>의 상처가 무엇인지 신경 쓰여서 견디지 못할 것이다.



파우스트
(어쩌면 시노는 히스의 <거대한 재액>의 상처를 알고 있는 건가?)



비가 더욱 격해지고, 땅에 떨어져 튀어오른다.
시노는 매서운 눈빛 그대로였다.

동쪽의 마법사는 친밀함을 꺼린다.
시노도, 네로도 과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도 똑같다.

부모님과의 따스한 추억이 많은 히스만이 가끔 옛날 이야기를 해 준다.

우리는 분명 비의 장막 너머로 광경을 바라보는 것처럼 사람과 어울리고 싶은 것이다.

잿빛이어도, 흐려도 상관없다.
윤곽을 희미하게 알 수 있고, 필요한 목소리만 어떻게든 전해지면 된다.

그 거리감이 편안했다.

하지만 목숨을 거는 싸움에 임한다면, 더욱 강한 신뢰관계가 필요할 것이다.

편안한 관계가 무너진다고 해도.



파우스트
……늘 그런 책을 읽고 있는 건가.


시노
히스한테 빌렸어. 블랑솃은 무가야. 동쪽 국가의 방위의 핵심이기도 하지.

역사에 있는 유명한 싸움이나 전술은 나보다 히스가 더 잘 알아.

그 녀석은 소극적이지만, 결코 둔하지는 않아. 선생님.



평소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시노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역시 나여도 알 수 있었다.

존경이 아닌, 빈정거림이나 비꼼이다.

시노가 입을 일그러트리며 코웃음쳤다.


시노
흥…….

영웅의 자리를 간단하게 버릴 수 있는 녀석은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녀석의 마음 같은 거 모르겠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연다.
문득 시노가 고개를 들었다.

길드 호텔에 들어가는 인물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시노가 바라보는 인물은 여성이었다.
나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시노
타냐(ターニャ)야.



이전에 동쪽 국가의 임무에서 만난, 쥬라 숲의 사냥꾼 타냐였다.

비가 약해졌다.
공기가 미적지근해지고, 하늘이 밝아진다.

사냥꾼을 생업으로 하고 있는 인물이 생활의 터인 숲에서 멀리 떨어지는 일은 좀처럼 없다.

시노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시노
말 걸고 올게. 여기서 기다려.


파우스트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달려갈 생각이었지만, 시노는 재빠르게 그녀를 붙잡았다.

대화를 나누고, 돌아온다.


파우스트
어땠어?


시노
쥬라 숲에서 알게된 상단의 우두머리에게 의뢰를 받아서 이 거리에 왔대. 책임감으로 받아들였다더라.


파우스트
책임감?


시노
눈앞에서 상단의 우두머리의 딸이 사라졌대.


불온한 사건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시노
첫 계기는 기묘한 소문이래. 쥬라 숲에 발을 들인 여행객이, 정신을 차렸더니 비의 거리에 호텔에 있었다는.


파우스트
쥬라 숲에 있었던 여행객이 비의 거리의 호텔에? 이 호텔인가?


시노
어. 오래된 삼각 지붕의 호텔. 저기야.



나는 다시 한번 호텔에 시선을 향했다.


시노
타냐도 처음에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여행객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대.

그런데 얼마 전, 쥬라 숲으로 길을 잃고 들어온 상단이 타냐에게 도움을 청했어.

상단의 우두머리의 딸이 무언가에게 발을 붙잡혀서 끌려갔다고.





시노
타냐가 달려가보니, 소녀가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어.

뭐가 소녀를 끌고 가고 있는지는 높게 뻗은 나뭇가지랑 흙먼지 때문에 보이지 않았어.

그런데 갑자기 원시림 속에서 작은 방 같은 게 보였어.





시노
그 순간 소녀는 사라졌어. 환상처럼, 방도 사라졌대.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이야기를 들었다.
깊은 원시림 쥬라 숲.
그 어둑한 광경에 드러난 작은 방…….


파우스트
(공간 마법인가? 미스라의 공간을 잇는 문 같은……)


시노
타냐는 그 소문을 떠올리고 상단의 우두머리에게 이야기했대. 그랬더니 탐색 의뢰를 받았다고 해.


파우스트
그래서 일부러 비의 거리까지……. 인간인 그녀가 여기까지 여행하는 건 힘들었을 텐데.


시노
별 거 아냐. 터프하고 다리가 튼튼한 여자니까.

뭐, 의뢰비를 받았다고는 해도, 사람 좋다고는 생각하지만.


파우스트
그런가. 그 외에는?


시노
안 들었어. 그 녀석도 서두르고 있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가늘게 떴다.

공간마법은 고도의 마법이다.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 호텔 주위에 상당한 마력을 가진 인물이 드나들고 있다.

지금은 오즈나 미스라 같은 경이적인 마력의 기척이나 위압감을 가까이 한 정령들의 술렁임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희미하게 기묘한 감각이 있다.
비 탓인지, 내 긴장감 탓인지, 분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호텔을 응시한다.
네로와 히스의 기척을 찾는다.
그들의 기척은 끊어지지 않았다.



파우스트
그녀는 호텔에?


시노
어. 히스랑 네로랑 만날지도.


가게 주인
손님…….



주인의 부름에 우리는 돌아보았다.

가게 주인은 굉장히 겸연쩍은 듯이 천천히 입에 검지손가락을 가져갔다.

물론 알고 있다.
그렇게 말하는 대신, 나와 시노도 입에 검지손가락을 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면 됐다는 느낌으로 가게 주인이 미안한 듯이 시선을 돌린다.

우리는 동시에 읽지 않는 책을 펼쳤다.

 

 

 



히스클리프
………….


네로
………….


히스클리프
호텔의 사람에게 부탁해서 한 바퀴 둘러봤지만, 길드의 흔적은 거의 없네…….


네로
그러게……. 길드라고는 해도, 옛날 얘기기도 하고.

만약 뭔가가 남아있었다고 해도 이 건물을 개축하거나 개선했을 때 처분해버렸을 거야.


히스클리프
마법사 길드의 책……. 『공영의 룰북』이라…….

그 책을 쓴 사람이 노바라는 마법사 노인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네로
노인? 뭐어, 노인이겠지. 그렇게 말하자면 나도 젊다는 말은 못 하지만…….


히스클리프
옛스러운 옷을 입은 백발의 신사라고 하지 않았어?


네로
맞아. 하지만 생긴 건 젊었어.


히스클리프
……강했어?


네로
강했지……. 미스라 쪽, 북쪽의 마법사들이 셋이서 덤벼도 죽이지 못하니까.


히스클리프
그렇지……. 시노는 자신의 손으로 노바를 쓰러트리고 싶어하고 있지만…….


네로
관두는 게 좋을 거야. 노바를 직접 상대하는 건 오즈나 북쪽의 녀석들한테 맡겨.

노바는 봐주지 않아. 어설프게 상대하다가는 시노가 돌이 될 거야.


히스클리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