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손에서 놓은 과거와 무른 미련
피가로
(다양한 것들이 지긋지긋하지만, 파우스트에게는 한 번도 낙담하지 않았지. 저 아이는 이상(理想) 그 자체였어)
(쌍둥이 선생님이 나를 놀리기 위해 보낸 사역마가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너무 훌륭했어)
(높은 의지도, 공평무사한 청렴함도, 약한 자를 대하는 자비로움도, 스승으로서 나를 존경하고 경애하는 마음도……)
예를 들면, 먼 옛날부터 대지를 흐르는 큰 운하가 있었다고 하자.
그곳에서 물을 길어올리고, 더러운 것을 씻고, 배를 띄워서 왕래하는 것에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다.
강의 은총에 감사하는 자들도, 한 번 범람이 일어나면 두려워하며 큰 운하에 사신(邪神)의 붙인다.
파우스트는 달랐다.
그는 다른 마음 없이 내게 가르침을 받고, 나에게 감사하며,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조모와 모친과 여동생을 지켜온 탓인지, 나에게도 군에서도 극기적으로 헌신적 1이어서…….
큰 운하의 물 한 방울에조차 감사하고, 결코 기어오르지 않고 그 은총을 평생 잊지 않을 아이였다.
파우스트
피가로 님.
위대하신 스승이시여. 부디 당신의 지혜를 무지한 저에게 하사해 주십시오.
긴 세월을 살아 당신이 얻은 훈계와 교훈을, 긴 세월을 사는 고뇌도 모르는 채…….
가르침을 청하는 비천함을 부디 용서하십시오.
피가로
상관없다, 파우스트. 아아, 너처럼 우리를 배려하는 자가 너 외에도 있었다면…….
파우스트
피가로 님…….
피가로
모두가 우리를 질문하면 답을 되돌려주는 메아리처럼 생각하고 있다.
답하지 않는 것은 심술이나 악화된 염세 탓일 거라고.
모두가 우리의 가르침에 우리의 피와 살, 그리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까마귀처럼 이 몸을 찌르고, 반복하지.
자, 알고 있다면 가르쳐줘.
잘못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빨리 가르쳐줘.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리석은 행동을 하여 죽어가는 것은 네 탓이라고.
파우스트
……당신께 그런 무례한 말을 하는 자가 있는 겁니까? 당신에게 가르침을 청하면서도?
피가로
그래. 그래서 어느샌가 지켜주려고 했던 백성들을 미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실은, 나도 오랜 시간, 구해주고 싶었다.
너라면 내가 할 수 없었던 것을 그들에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내어주겠다. 파우스트.
피가로
………….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눈부신 햇볕에 눈을 가늘게 뜨며, 지난날의 광경을 떠올린다.
정성들여서, 신중하게,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마법사가 되도록 키우려고 했는데…….
내가 손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아직 무른 미련이 있다.
마법관의 탑에서 나에게로 시선을 옮기고, 레녹스가 물었다.
레녹스
미련이 있는 얼굴이시네요.
피가로
………….
나는 불쾌하게 입을 닫았다.
이 녀석, 정말이지 이런 점이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태도로 꺼내보이는 것은 가벼운 친교의 하나이기도 했다.
내가 화난 얼굴을 한다.
그가 사과한다.
레녹스
죄송해요.
피가로
괜찮아.
뭐어, 그렇겠죠, 그런 느낌으로 레녹스는 태연했다.
이 녀석, 정말이지 이런 점이 마음에 안 든다.
레녹스
파우스트 님과 제대로 이야기를 하시면 좋을 텐데.
피가로
어떻게? 날 피하잖아.
레녹스
파우스트 님은 지금은 저주상 같은 걸 하고 계시지만, 뿌리는 굉장히 정직하신 분이에요.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면서 당신이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거예요.
피가로
그럴지도 모르겠네. 고마워. 참고할게.
마음이 담기지 않은 감사인사에, 레녹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걸어나갔다.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은 복잡하니까…….
피가로
네가 단순한 거야. 말해두겠지만, 파우스트가 피하고 있는 건 너도 똑같았어.
요즘에는 왠지, 파우스트가 네 불굴함에 져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 같지만.
레녹스
변해가게 되신 거라면 제 방법이 정공법이었던 게 아닌가요?
피가로
이 녀석……. 신경 쓰지 말라고 해서 가능한 한 신경 안 쓰고 있었던 내가 바보 같잖아.
파우스트의 요청에 응하지 않고 꼬박꼬박 신경 썼던 네가 더 잘하고 있다고.
하지만 뭐, 세상이란 건 그런 건가.
레녹스
잘하고 있지는 않아요. ……저는 조금 더 자제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때처럼 몰아세우게 되어버릴 거예요.
레녹스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원문 挺身. 스스로 앞장서서 행동함 [본문으로]